할머니들 고향 땅 밟기 동행기
성산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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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9 00:00
성로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가는 고향땅밟기..
연일 맑은 날씨로 인해 푸르른 가을햇살을 맘껏 즐기며 차에 올라탔습니다. 오랜만에 가는 고향이라 많이 설레였던지라 어르신 모두 잠을 설쳤다고 하십니다. 특히 조모 어르신께서는 오랜만에 만날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예쁘게 보이고 싶어 몇 번이나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셨는지 모릅니다...이렇게 어르신 세분과 직원 세사람이 들뜬 마음으로 오랜만에 일상에서의 탈출을 감행했습니다...서대구IC를 지나 금호휴게소에 들러 알감자와 호두과자를 사서 어르신들의 심심한 입을 달래어 드리고 임선생님의 멋진 드라이브 실력으로 열심히 달린 끝에 어느새 영주에 도착했습니다. 영주에 도착하니, 하나님께서 들판에 황금을 뿌리신게 아닌가 할 정도로 황금색으로 물든 들판이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도시에만 살다보니, 이렇게 벼가 누렇게 익은 들판을 본지 너무나 오래되어, 그 눈부신 풍경을 보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간혹 텔레비전에서 가을걷이하는 들판을 보신 것 외에는 요즘들어 통 나락이 여문 논을 보지 못한 어르신들도 또한 다들 입을 다무시지 못하고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시며 옛 생각에 젖어드는 듯하셨습니다................
이런 가을풍경을 뒤로 한 채 본격적으로 조모어르신의 동생을 찾기 위해 나섰습니다. 다행히 어르신동생분과 전화연락이 되어 그 분이 사시는 곳에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조모어르신께서 기억이 날 듯 말 듯하다며 연신 이 집 저 집 대문을 열어보시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동생이름을 물어보시는 등 안절부절하셨습니다. 몇 분이 지나서야 저 멀리서 동생분이 걸어오시니, 어르신께서 열심히 달려가 동생을 얼싸앉고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몇 년동안 보지 못해 무척 서운했다며 동생분은 며칠 자고 가길 원하셨으나, 어르신께서 안된다고 하시니, 많이 아쉬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같이 계실 수 있도록 점심은 동생집가서 드시라고 말씀드리니, 다른 어르신들에게 식사대접을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조모어르신을 잠시 남겨두고 남은 일행은 영주에서 유명한 부석사를 잠시 들리기로 했습니다. 영주시내를 조금 벗어나, 부석사에 도착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김모 어르신께서 너무나 탐스러운 사과가 열린 과수원이 보여 잠시 구경하고 싶어하셨으나, 주인되는 듯 보이는 어르신께서 서리를 염려하여 노여워하시는 바람에 혼만 나고 나왔습니다. 부석사에 올라가는 길이 가팔라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길가에 처놓은 부석사에 관한 글을 읽으며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절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장관이라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느라 배가 고픈지도 몰랐습니다. 절을 내려오다보니, 배꼽시계가 아우성이라 어디 맛난 음식없냐 찾아보느라 요기조기 목을 빼고 찾아다닌 끝에 영주와 풍기에서 유명한 인삼요리를 먹기로 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인삼불고기와 인삼돌솥밥을 시켰는데 십여가지가 넘는 반찬에 인삼이 팍팍(?) 들어간 불고기와 돌솥밥....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평소 입맛없다며 반공기도 안 드시던 김모어르신께서는 밥한공기와 불고기를 뚝딱 해치우셨다는 후문.....(인삼이 좋긴 좋은가봅니다^^.)
이제 배도 불렀으니, 또다시 여정을 펼쳐야겠지요...
이번엔 김모어르신이 성로원에 입소하기 전까지 사셨다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영주시내에서 얼마 안 걸린다는 어르신의 말씀을 믿고 어르신이 가리키는 쪽을 열심히 달렸으나, 결국에는 같은 자리에서 몇 번 멤돌았답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을 물으니, 가까운 곳에 어르신께서 살던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알고 지낸 이웃들 대부분이 복지관에 놀러가셔서 바로 옆집 어르신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분도 홀로 손자를 키우시며 힘들게 하시고 계셨는데 김모어르신께서 양로원에 입소한 지 몰랐다며 그냥 가버린게 너무 서운했다며 연신 눈물을 훔치시며,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셨습니다. 가을해가 뉘엿뉘엿 질 쯤이에야 아파트를 빠져 나왔습니다. 우리가 아파트입구를 나올때까지 그 어르신께선 다음에 또 놀러오라며 계속 인사를 하셨습니다.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아쉬워하는 그 모습을 뒤로 한 채 이젠 대구에서의 일상속으로 돌아와야했습니다.
대구가 고향인 저로서는 평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다녀온 후 새삼 고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어르신들에겐 고향이란 요즘 젊은이들이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그 분들의 고향에서의 기억들은 마음속에 숨겨두었다가 남몰래 꺼내다보는 그런 보물상자가 아닐까싶습니다...
대구노인요양원 생활지도원 최 문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