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다녀왔습니다*^^* (경북 영천, 경주 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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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다녀왔습니다*^^* (경북 영천, 경주 안강)

성산홍보실 0 9684
" 선생님요~ 이번에는 고향 어디로 갑니까~?? " 매번 어르신들이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하는 고향땅을 방문하기 위해서 같은 고향 어르신들을 모아 장소를 정하고 있죠. 이번에는 경주시 일원이 고향인 할머니들의 방문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 " 화장도 안했는데 벌써 출발합니까? " " 이래 입고 가믄 되겠나~ 돈은 넣었나~?" 할머니 세 분이 벌써 마음이 설레어 고향가는 준비가 바쁘기만 합니다. 열매차가 할머니들의 그리움을 안고 쌩쌩 달려갑니다. 식당 선생님들께서는 할머니들 무료하실까봐 간식까지 챙겨 주셨죠. 할머니들은 봉고차 안에서 6.25 동란 이야기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지, 그땐 그랬지~" 하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이야기꽃이 피었죠 운전대를 맡으신 배선생님도 여행길의 즐거움을 위해 생라이브로 노래를 불러주시기 시작하셨고 황선생님은 뒷자리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맞장구, 각각의 주문 (물, 휴지 요구 등)을 접수하시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첫번째 장소는 경북 영천.. 정** 할머니 고향입니다. "팔암리로 가면 되요, 팔암리~" 정확한 명칭이 아닌지 지도상에도 보이지 않더군요. 당황한 일행은 이리저리 묻고 물어 북안면에 도착하였죠 "거 팔암리라 하면 다 아는데.. 왜 모르는고,," 모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 집근처에 포도나무 아래를 보고서 우리는 비로소 눈을 떼지 못했죠. 포도나무 아래에 바위 8개가 놓여 있었거든요 근방의 어르신들에겐 유명한 장소였습니다 ^^ 정** 할머니께서는 영천에서 태어나서 시집도 영천으로 가셨죠 지금은 질부 혼자만 남아서 영천땅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영천땅에서 농사 지어 농비로 아들 대학 공부까지 시키고 가정내에 역경이 많아서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살던 빈집을 들어가 안방, 부엌, 마루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여동생과 찍은 사진이 아직도 사진액자에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질부는 할머니가 시설에 가신 이후 얼굴도 좋아지고 허리도 많이 펴지고 좋아보인다고 하시면서 꼬옥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기념 촬영을 마치고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며 북안면을 떠나옵니다. 열매차는 다시 경주 안강읍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었습니다. 아직 고향을 방문하지 못한 어르신들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 고향지에서 길을 헤매면 조바심을 냅니다. 행여나 자신의 고향에 가지 못할까 싶은 염려 때문인가 봅니다. 문화 유적지인 경주에 들러 보문단지 입구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위해 근방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순두부 정식집에 들렀습니다. 맛있는 해물파전도 함께 곁들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아직 고향을 눈앞에 둔 어르신들은 부리나케 차로 향합니다. 이미 고향을 다녀오신 분은 여유있는 걸음으로 “점심식사도 좋고 다 좋다” 며 대만족이시구요~ 경주일대를 드라이브 하며 안강읍에 도착하였습니다. 안강시내로 진입하자 경찰들이 호위를 하러 곳곳에 대기 중이더군요 어르신 왈 “우리가 고향 온다고 반기러 나온 모양이구만~”하시며 신기한 듯 보십니다. 거의 변한 게 없고 예전 식당도 그대로 남아 있는 안강시내를 보시며 끊임없이 추억을 더듬어봅니다. 마침 동행한 황선생님의 친정도 안강이라 지리를 잘 알고 계시더군요 할머니 두 분은 자신의 고향에 다다르자 기쁜 나머지 마트앞에 세워 달라 하십니다. 손수 방문할 집에 선물을 사들고 가셔야 한다구요. 꾸깃꾸깃 넣은 돈을 꺼내시며 직접 고른 음료수를 고이 싣고 안강읍 양월리에 도착하였습니다. 두 번째 조** 할머니의 고향땅을 밟게 된 거죠. 할머니께서는 안강 시장 근처에서 예전 살던 집 주소가 가물가물 하신 모양입니다. “이쯤이였는데.. 여기서 어디더라..” 집터도 조금씩 바뀌고 하여 주소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죠. 갑자기 차에서 내리셔서 어디론가 향하십니다. 놀란 직원이 함께 동행하여 할머니 뒤를 쫓아갑니다. 갑자기 대뜸 어느 집 대문으로 향하시기에 아하,, 기억이 나셨나보다 했죠 할머니께서 대문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십니다. “계십니까,, 권복수이~ 권복수이 집 아는교??” 집주인이 몹시 당황스러워 합니다. 지금 할머니가 찾고 계신 집은 예전 40대때 힘겹게 전세로 살면서 도움을 받았던 주인집을 찾고 계시거든요 골목골목 찾다가 드디어 발견 !! 집주인은 어디 외출을 했는지 보이지 않고 인근 이웃중에 함께 성당에 다니면서 도움 받았던 이웃을 만나게 되어 연락처를 주고 받았습니다. 함께 사진도 찍고 예전 일을 이야기 하시며 계속 집주인네 아들 소식을 물어보십니다. 결국 얼굴은 보지 못하고 이웃 주민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세 번째 김** 할머니의 고향은 인근이여서 쉽게 찾아뵈었습니다. 안강 제일교회를 찾아 그 근방 집 문패를 보고 친구분 댁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80세가 넘은 두 부부가 함께 살고 계셨는데 한참을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신지..” 하시며 악수를 나누시더니 “왜 이렇게 늙었노~” 하시면서 목멘 소리를 하십니다. 해방이후 안강에 23세에 시집와서 살면서 50세까지 사신 곳이라 추억도 참 많으셨는데요 노부부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음료수를 대접하십 니다. 친구가 왔다며 수첩을 꺼내들고 주변 집에 전화를 하셨는데 연결이 쉽게 되지 않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근처집에 또 다른 친구가 병 환으로 누워있는데 함께 방문하자고 하셔서 일행 모두 다른 친구분 집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죠. 세분이 함께 만나자 이야기꽃이 끊이질 않습니다. 세 분은 20대에 시집와서 교회에서 만나 함께 주일학교 선생, 성가대, 그 외 궂은 일을 함께 도맡아 봉사를 하며 친구처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던 관계였습니다. 서로의 늙고 병든 모습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심함을 이야기 하십니다. 참으로 1분 1초가 애절하기만 합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야 하는 입장에서 쉽사리 이제 그만 가시자는 말도 쉽게 꺼낼 수 없습니다. 웃는 모습이 해맑기만 합니다. 어르신들에겐 지금 이순간도 훗날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할꺼라 생각 하며 가장 기쁜 시간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소원해봅니다. “살아 생전에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우리 친구 잘 부탁합니다.” 경주 안강에서 뿌듯함을 안고 돌아오는 마음 한켠엔 정말 여러 가지 생각 들이 교차를 합니다. 과연 얼마나 어르신들의 필요를 채워드렸나 싶은 마음과 우리에겐 사소한 것들이 그분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구로 열매차는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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