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할머니의 길고 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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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할머니의 길고 긴 이야기

성산홍보실 0 4945
모처럼 봄다운 봄을 느낍니다. 포근하고 따뜻하고 바람도 상큼하고 봄날이 기지개를 펴며 우리 성로원 식구들의 가슴을 활짝 열어줍니다. 그런 오늘 우리들은 뜻깊은 이별을 했습니다. 봄날의 질투인양 우리가 사랑하던 이안나 할머니와 이 아름다운 계절인 봄에 영원히 이 땅에서는 이별을 고해야 했던 날입니다. 이 안나 할머니.... 우리 성산일기의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뽑혔던 개성만점의 할머니가 성로원에서의 20년 동안의 정든 삶을 접고 78세의 연세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7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너무나 많은 질고와 고통으로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던 슬픈 여인! 할머니는 정말 미인중의 미인입니다. 사람들이 늙은 사람이 이뻐봐야 얼마나 이쁘겠냐고 하시겠지만 할머니는 정말로 이쁘신 분입니다. 뭐랄까 꼭 예전 얼짱 같다고 할 정도로 계란형의 얼굴에 가냘프고 날씬한 몸매 눈코입의 조화가 지금 연예인들 뺨칠 정도입니다. 할머니는 희망원에서 20년전에 오셨습니다. 60세도 되기 전에 그는 벌써 자기의 이름도 잊고 어려서 불려오던 세례명 "안나"가 자기 이름인줄 알고 우리에게 안나라고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호적도 없는 할머니를 그저 안나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어울릴줄도 모르고 그저 새벽이나 낮이나 자기가 발길 닿는 곳곳으로 다니며 남의 집 쓰레기통을 뒤지며 각양각색의 물품 수집을 취미로 하는 별나고 이상한 할머니였습니다. 머리에는 핀과 끈과 머리카락이 뒤범벅이 되어있고 손에는 손가락마다 줏은 반지나 실로 동여 매어있고 옷도 위에 껴입고 또 껴입고 해서 여러개를 한꺼번에 입고 얼굴에는 숫으로 눈썹을 그리고 인주로 입술을 바르고 한쪽 알 없는 썬그라스를 밤이나 낮이나 끼고 다니시던 할머니는 당신 나름대로는 꽃단장을 하고 다니면서 그는 늘 쓰레기에만 관심을 뒀습니다. 할머니와 쓰레기와의 전쟁을 치룬 얘기는 지금도 우리를 웃음짓게 합니다. 하도 쓰레기를 줏어오는 바람에 할머니 방과 우리 시설의 뒷뜰은 할머니의 쓰레기 처리장이 되기 일쑤이고 줏어온 옷가지들을 물에 빤다고 종일 수돗물을 틀어놓고 수돗물을 너무 심하게 낭비합니다. 할머니의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서 대책회의(?)도 빈번하게 했고 한번씩 날을 잡아서 그 동안 모아놨던 온갖 잡 쓰레기를 버릴때도 할머니가 안계실 때 007작전을 방불케 빠르고 신속하고 잽싸고 흔적도 없이 해치워야할 정도로 할머니는 정말로 우리들의 애간장을 가장 많이 태운 분 중의 하나입니다. 봄에는 쑥을 캔다고 나가서는 해가 빠져야 들어오시지만 가지고 간 바구니에는 센 쑥만 가득 담아와서 먹지도 못하고 늘 버리기 일쑤이고 남의 농사지어 놓은 나락을 집어와서는 자기방에서 말린다고 펼쳐놓고 늘 예전에 하던 습관적인 이상한 행동은 적잖이 우리를 당황스럽게도 우습게도 황당하게도 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우리 시설에 오시고 몇 해 있다가 할머니에게는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아들이 찾아왔습니다. 할머니를 많이 닮은 잘생긴 부부는 할머니가 여기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수소문을 해서 듣고 찾아왔노라고 하면서 뵙기를 원했고 당연히 만나게 해드렸지만 할머니는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누구시냐고 되려 묻는 것입니다. “제가 할머니의 아들 가명입니다”하며 할머니의 유일한 아들이 이야기 하자 할머니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아니라예, 우리 아들은 7살이고 이름은 가명이라예" 하면서 존대를 깍듯이 하며 어려서 자기와 헤어졌던 아들만 기억할 뿐 장성하여 나타난 아들은 전혀 알아보지도,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랬습니다. 할머니는 정신적인 이상증세로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고 어린 아들과도 헤어지는 아픔을 겪고 그 충격으로 인해서 그 이후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제공하며 여러 해가 흐른 뒤에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되었고 직원들이 집중적으로 care를 하는 상록실에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쓰레기를 줏으러 갈 수도 없고 쑥을 캐러 갈 수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눈썹을 시커멓게 할 수도 없고 인주로 입술을 바를 수도 없습니다. 머리에 핀도 여러개를 함부로 꽂을 수도 없고 옷도 여러개를 겹쳐서 입을 수도 없습니다. 할머니는 직원들의 도움으로 이제는 깨끗하고 청결하고 품위있게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워낙 말씀도 없는데다 여자스럽고 부지런한 성격은 상록실에서 당신보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직원들의 일을 도와 기저귀를 개키는 일들을 도와주며 할머니는 상록실의 터줏대감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직원들도 할머니가 정신적인 문제가 약간 있는 분이기에 흥분할 일이 거의 없도록 돌봐드리고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화장을 예쁘게 해드리거나 책을 읽어드리거나 직원들 이름을 외울 수 있게 가르쳐 드리면 할머니는 너무 좋아하시고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러던 할머니가 그저께 갑자기 심근경색이 와서 병원응급실에 모시고 갔지만 다시는 회생을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물론 멀리 있던 아들가족이 찾아왔고 그들은 과거의 슬픈 가족사의 한 페이지에서 다시 할머니와의 여러 가지 가물가물하고 아른한 추억을 이야기 하며 슬퍼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원에서 할머니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하얀 관 위에 예쁜 미소를 띤 안나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너무 눈에 띕니다. 원장 목사님의 잔잔한 설교와 이곳 저곳에서 할머니들과 직원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직원들은 정들었던 할머니와의 이별을 슬퍼했고 할머니들은 당신도 이제 얼마 안있으면 저 자리에 뉘여있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은 슬픔가운데 애도하고 있었습니다. 예배뒤에 한 분씩 흰 국화를 헌화할 때의 그 모습은 정말 너무 숙연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천국에 먼저 가 있으라고... 우리도 이제 곧 따라가겠노라고....이제는 아주 편안히 쉬시라고....절망과 슬픔이 없는 그 곳에서 행복하라고....그곳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지 말라고....며칠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서 만나자구..... 이제는 안나할머니를 이곳에서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안나할머니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슬펐던 과거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할머니는 하나님과 함께 저 높은 곳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가 이곳에서 만나자”고 그 때는 정말 기쁘게 웃으면서 만나자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할머니 우리 나중에 천국에서 기쁘게 만나자구요. 그때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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