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로원 마당에 멍석을 깐 이유
성산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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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2 00:00
해마다 정월 대보름즈음 하여 성로원 마당에는 멍석을 편다. 항상 멍석은 그 누군가를 위해 펴지는 것, 이 멍석의 주인공을 기다리면서 성로원은 빵빵한 사운드가 울려 퍼진다.
빨간 조끼를 걸친 소수의 무리들이 등장을 한다. 아하~ 이들이 바로 오늘의...
아니다. 절대 아니다. 물론 중요한 사람들이긴 하다. 우린 이들을 일명 자원봉사자, 다시 말해 행사 도우미라 칭한다. 그러면 멍석위에서 끼를 발휘할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대문 입구에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아하,, 우리가 제일 일찌감치 왔구먼,,”
주인공인가? “ 행여나 늦을까봐 부지런히 나섰더니.. 아직 아무도 없네?”
따끈한 차 한잔씩 손에 든 채 후후 불어가며 기다리시는 사이, 조금씩 입구에 6학년 1반 이상의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대구의 젊은이들의 광장인 동성로를 방불케
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여긴 노년의 동성로 광장인 성로원 마당~~ 지역에 꼭꼭 숨어계시던 어르신들이 ‘나 여기 있소’ 하고 한 분 한 분 나타나신다.
바로 윷가락을 던질 각 동네의 한 팀 한 팀이 멍석 위의 연예인들~
동네마다 회장님을 앞세워 선수들이 입장하는 광경은 꼭 올림픽 개막식을 보는 듯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 뒤를 이어 동네의 응원팀들까지 굳은 각오로 “이번 만큼은 상품을 꼭 받아가리라”는 굳은 결심을 하고 상대편 팀들을 흘겨본다. 탐색전,,,
성로원 뜰 안은 여름 바다 해수욕장의 인산인해처럼 어르신들로 파도치고 있었다.
머리위로 보이는 동네이름의 피켓과 선수들의 가슴에 달린 명찰은 정말 어느 유명대회 못지않을 만큼 대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구청장님, 대표이사님의 인사말씀에도 진지하게 귀기울이시며 대회 규칙 또한 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에 새기신다.
예선전이 시작이 되었다. 멍석 위에서 두 동네가 만나게 된 것,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오늘은 원수는 멍석 위에서 만난 날이 되었다. 오히려 가운데 서있는 심판이 긴장할 정도로 두 팀의 눈빛들은 날카로웠다. ‘심판,, 거 기죽지 말아여. 제대루 해 제대로,,’
윷놀이가 시작되자마자 어르신들의 머리에는 갑자기 청백전의 운동회처럼 흰색, 파랑색 머리띠가 둘러졌다. 윗도리를 벗는 어르신, 팔소매를 걷어부치는 할머니, 윷말판 앞에서 자리잡은 어르신 등등 각양각색으로 긴장감이 역력했다. 같은 경로당에서 서로 지지고 볶았어도
오늘 만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경로당, 우리 동네를 외치며 기합을 모은다.
윷가락이 사람들을 춤추게도 만든다. 윷이야, 모야~~ 하며 온 몸을 흔들며 멍석 위를 다니기도 하고 옆어르신과 손을 잡고 덩실덩실 함박웃음을 머금기도 하시면서 즐거워하신다.
윷가락이 사람들 열을 내게 만든다. “아니, 어째서 윷을 그렇게 던지는겨,, 이건 무효야 무효!!”, “ 아하~ 낙방이다 낙방,, ” , “ 거 좀 조심히 던지지 않고,, 에잇~ 노인네,,,”
윷가락이 사람들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든다. 비로소 한판이 끝이 나고서야 배꼽시계의 외침을 듣고서 잘 차려진 식사를 향해 가시기도 하셨으니... 성로원 잔치상의 위력으로 인해
한 켠에는 예선전을 치루는 도중, 팀원이 식사하러 혼자 가는 바람에 선수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 어르신,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지 갑자기 사라지시면 어떡해요~ 지금은 대회중이란 말이에요 미워...”
부랴부랴 식사를 마치고 대회에 탈락될까봐 뛰어오는 어르신, 오자마자 같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얼마나 혼이 나시던지.. ㅋㅋ 그 분 윷은 잘 던지셨나 모르겠어요~
행여나 낙방이라도 했다면 아마도 그분을 두 번 죽이는 셈이 되었겠죠~
점심시간에도 새마을 부녀회와 일사천리 직원팀들은 능숙한 서빙과 요리솜씨로 어르신들을 접대하며 음식이 떨어진 곳을 찾아 종횡무진하며 찾아가는 서비스를 몸소 실행하고 있었다. 금년도 목표가 “찾아가는 서비스”라지요 아마~~
곳곳에서 “어르신 식사하셨는지요” 라는 말에,,, "자~ 알 대접받았죠“ 하는 대답을 들으니
내심 흐뭇한 기분이 든다.
어르신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다는 정보로 신문기자도 보이고 한방병원에서도 무료로
진료를 해주시기 위해서 침, 뜸을 구비하여 의료봉사를 해주셨다. 새로이 변화된 휴게공간에서 뜸냄새가 진동을 하며, 냄새만 맡아도 왠지 몸에 좋을 것만 같은 착각 속에 어르신들이 대기번호를 받아들고 안방처럼 편히 누워계신다. “ 동의보감에 명의,, 허준,,은 아니고, 한의사가 왔어요~ 다들 모이세요” 윷놀이로도 정신없지만 한방진료 한 번 받아보겠다고 몰려드는 인파도 만만치 않을 정도였으니, 역시나 이 곳 이름을 다시 생각해봐야 겠다.
달서구의 어르신 동성로 라고,,, 지역어르신의 광장과도 다름없는 성로원이 없다면 아마도 어르신들은 어디에서 오늘처럼 서로 소리지르며 춤도 추며 노년에 열정을 빛내고 계시겠냔 말이다. 마당이 넓어 천만다행이다.
마당 곳곳에서는 승승장구로 치고 올라가는 팀이 있는가 하면 일찍부터 패하여 어깨가 추욱 늘어진 팀도 보이고, 아슬아슬하게 결판이 안나서 진땀을 빼고 있는 팀도 있었다.
패자 팀들이 벌써부터 행운권 추첨만 기다리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통에 패자부활전을 기획하여 다시금 어르신들에게 새 희망을 드리는 이벤트를 마련하였다. 좀 전까지만도 추욱 늘어졌던 어깨가 갑자기 기운을 내며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보니, 시끌거리며 싸워도 무기력한 모습보단 낫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의욕적인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다우니까,,
“그래, 이번엔 제대로 함 해보자,,” 그분들을 기운나게 만들어 드리는 것, 그게 우리들 할
일이 아닐런지...
점점 승자팀의 윤곽이 잡혀가는 중에 어르신들도 약간의 쌀쌀한 날씨 속에서 열기를 더해 갔고 이에 질세라 주방에서도 열기를 더하여 간식 오뎅을 순식간에 마련하여 갑자기 시장이
들어선 줄 알았다. 긴 막대에 꽂은 오뎅을 하나씩 손에 들고서는 국물을 마셔가면서 경기에
열중하는 어르신들,,, 곳곳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람 동원하는 통에 어르신들 이리저리 몰려다니시며 오늘 하루 엄청 바쁘셨을 것 같다. 자원봉사 학생들의 도움으로 어르신들이 편하게 경기를 즐기며 우승을 향하여 목이 쉴새라 흥분하고 또 흥분을 한다.
드디어 대망의 4강전,,, 수많은 무리를 뚫고 강력히 올라온 4개의 팀,
본동, 제림하나로, 월배, 진천귀빈,,,, 4강전인 만큼 3판 2승제의 팽팽한 대결이 눈길을 끌었다. 한 번의 패배가 건강의자와 발맛사지기를 앗아가는 이 결정적인 순간,,,,
선수들은 더더욱 예민해지고 윷가락의 각도 및 낙방의 여부, 말판의 말을 놓는 정확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무슨 명탐정 홈즈도 아니고 서로의 눈빛이 수사반장이 따로 없다.
이에 따라 심판도 잘못했다가는 도리어 선수들에게 몰매 맞을 분위기라 심판도 공정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더욱이 다른 곳의 심판이 함께 가세하여 흥분의 장을 진정시키기도 하였으니,, 이 열기는 이 날의 찬바람을 아주 우습게 알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성로원 직원들까지 노년의 열기에 도전하듯 소리지르며 윷놀이 한판을 ‘친목회비 따내기’ 타이틀을 걸고 벌이고 있었단 사실,, 어르신들 알고 계셨나요??
멍석위의 윷가락이 여러차례 엎치락 뒤치락 하던 끝에..
승리의 여신은 진천귀빈 경로당에게로 돌아갔던 것이다. 이얏~호 @!@
아쉬워 하는 준우승팀, 그래도 순위권에 들어 기뻐하며 어쩔줄 모르는 3등상 팀들...
마지막 순서를 장식하는 행운권 추첨시간! 일찌기 패배하여 근처 볼 일보러 가셨다가 일부러 추첨 시간을 맞춰오신 어르신들도 보였고, 행운권 종이를 손에 꼭 쥔 채 불려지는 번호에 귀를 기울이며 꼼짝도 하지 않는 어르신도 보였다. 경매시장처럼 모여서 종이를 펴들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신다. 복권당첨이나 된 듯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지고 부러움의 눈길 또한 쏟아지며 포장된 행운 선물을 쳐다보신다. 마지막 행운상, 축하의 박수를 뒤로하며 아쉽게 오늘의 멍석을 접어야 했다. 성로원 뜰에서는 우승팀을 위해 이날 원장님과 이사장님과 함께 단독 기념찰영을 거행하였다. 1,2, 3위까지의 경로당 어르신들의 입은 함박꽃이 피었고 상품을 보란 듯이 앞쪽에 두고서 기념찰영에 멋진 포즈로 하나, 둘, 세~~ 엣!!
찰칵~
멍석은 그렇게 어르신들과 함께하여 마당에 아침부터 펴졌었고 오후 늦게 접히게 되었다.
오늘의 윷놀이 이야기도 이제 접으려 한다.
한바탕의 소란이 일 듯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 그렇게 활기있는 모습으로 재미나게 세상을
사셨으면 좋겠다. 다음 멍석을 펼 때도 어르신들의 재미난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멍석을 펴줘도 놀 줄 모른다는 이야기는 성로원에서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란 사실...!!
그대들은 알고 있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