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월급 안 줘?????
성산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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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8 00:00
여름의 끝자락에서 더위와 낑낑매고 씨름을 하고 지내는 하루하루입니다. 성로원의 어르신들은 그동안 직원들의 여름 휴가기간도 있고 너무 더워서 프로그램을 푹 쉬고 있었기에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다며 하루하루가 너무 길고 무료했다고들 하십니다.
이렇게 무료해하시던 할머니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집니다. 오늘이 할머니들의 용돈이 나오는 날이라 우리 담당직원 선미씨가 할머니들의 용돈을 은행에서 찾아다가 한분씩 찾아다니며 나눠드리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입이 쫙쫙 벌어집니다.
한달중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날, 당신들 말로는 오늘이 오래살고 고생많이 했다고 국가에서 주는 고생위로연금이라나요. 어떤 분은 월급날이라고도 하지요.
65세 이상은 45,000원씩 80세 이상은 50,000원씩 경로연금이 나오는 날인데 모든 분들께 해당이 되는게 아니라 무료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에게만 지급이 됩니다.
우리시설의 특성상 무료시설과 실비시설이 함께 있는지라 희비가 엇갈리고 서로 마음이 상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무료에 계시는 할머니들은 이 용돈이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시도때도 없이 용돈이 나왔는가 물으러옵니다. 담당직원 선미씨는 입에 녹음을 해놔야할 지경입니다. "25일이 지나면 제가 찾아다가 다 지급해 드릴께요. 방에가서 기다리세요"하며 말씀을 드려도 그 다음날이면 또 다른 사람을 보태서 데리고 와서 물어보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실비시설에 계시는 할머니들은 그때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을 합니다. "뭐 먹은게 채했나봐 약좀 줘요"하며 간호실을 왔다갔다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늙기는 같이 늙는데 왜 쟤들(^^)만 용돈 주노?"(시비형)
"우리들은 아들이 있어서 생활비 내는 것도 배 아픈데 쟤들은 공짜로 있으면서 왜 용돈까지 보태주노?"(은근 무시형)
"돈 나눠줄라면 내 안보는데서 나눠줘라!"(심술형)
"우리 아들은 돈을 못벌어서 내 용돈을 안주는데 이번만 어떻게 나도 좀 나눠도(줘)^^"(타협형)
"흥!나는 그런 돈 안받고 아들딸있는게 훨씬 편타!!!!"(억지 위안형)
"원장님예! 우리 딸이 너무 어려워서 내 생활비도 잘 못냅니다. 용돈은 그만두고 생활비나 좀 받지 마이소!"(본론무시 애걸형)
이러면서 여러가지 유형으로 용돈을 못받는것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한편,
용돈을 받은시는 할머니들의 말씀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매일 같이 아들 딸 잘 뒀다고 자랑하는 할마시들 이럴때 배 좀 아프겠지?"(놀부심보형)
"히히 얼른 용돈타서 짜장면 시켜먹어야지. 내일은 옆에 할머니랑 돈을 보태서 맥시칸 통닭을 시켜먹을까?"(일단은 먹고보자형)
"흐응! 젊어서는 자기들이 자식있다고 훨씬 대우잘받고 잘살았지만 지금은 무자식이 상팔자여!"(과거복수형)
"우리 아들있다고 말하지말어. 그러면 내 월급못받어. 큰일나. 정말로는 "나 아들 있어. 몇일전에도 밤에 잠깐 다녀갔어. 절대로 말하지마"(응큼형)
이런식으로 경로연금이 지급되는 날의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난감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은 담당자 선미씨입니다. 금세 용돈을 나누어 드리고 오면 사무실로 뽀르르 쫓아와서는 왜 나는 돈을 안주냐고 하면서 화를 내십니다. 아무리 할머니가 용돈을 받고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느냐고 해도 믿지를 않고 안받았다고 막무가내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을 동원해서 찾아보면 방 서랍이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는 겁니다. 당신은 잘 둔다고 한것이 금세 건망증으로 잊어버려놓고는 다른 사람이 돈을 받는 것을 보고는 흥분해서 찾아오셨던 거지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담당자는 정말 울고싶은 심정이었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옆에 보증을 설 직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지급해드립니다. 용돈을 지급하고 할머니가 도장을 찍고 옆에 보증인으로 같이 다니는 직원들이 또 도장을 찍어서 확인을 하면서부터는 이제 그런 엉뚱한 오해나 시비가 없어졌습니다.
연세가 들면서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든든하다고 합니다.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를 가장 좋아하시는 할머니들인지라 어떤분은 꼬박꼬박 모아서 어려운 자녀를 도와주시는 분도 있고 교회를 다니시면서 헌금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먹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은 매일같이 음식을 배달시켜서 잡수시는 분도 있고 그 용돈도 자기 성격대로 쓰십니다.
아무리 아퍼서 누워있어도 주머니에 돈을 한번씩 꺼내보고 만져봐야 안심이 되는 할머니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용돈을 받은 분은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한껏 고조되 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용돈을 받지 못하신 분들은 하루종일 우울하고 배아픈 날이기도 합니다.
무료시설이나 실비시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무런 차등없이 똑같이 이런 경로연금의 혜택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보며
용돈을 받지 못하고 침울하게 쳐다보며 말씀하시는 실비시설 할머니의 화난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듯 하네요.
"왜 나는 월급안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