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혹시 낙엽지는 가을에 실연을 당하기라도...&
성산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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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7 00:00
갈바람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나무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들이
벗어집니다. 올 가을도 많은 추억과 그리움을 남기고 낙엽되어 떨어지는 나무잎들의 사연도 엄청시리 많겠지요.
나뭇잎만 사연이 있을까요? 아니지요?
하루 세번 식사만하셨다 하면 나무위에서 떨어지는 낙엽만 빵꾸가 나도록 주시하고 있다가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는 낙엽이 땅바닥에 도착도 하기 전에 바로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푸대자루에 담아버리며 가슴 아린 추억도 함께 담아버리는 할아버지!
그 열심이 지나쳐 이제는 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는 잔디위에 조차도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바로 헤집고 들어가셔서 잔디위의 낙엽까지도 푸대에 담아버리는 할아버지!
그런 이상우 할아버지에게도 많은 사연이 있겠지요.
예전에 군대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군대 생활을 못하고 제대를 하셨답니다. 그리곤 장가도 못가고 여태까지 형님네 집에서 생활하시다가 형님이 병으로 돌아가시자 몇달전에 저희시설에 입소가 되어오셨습니다.
멋도 모르고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새로 오셨나요?"하며 묻자 처음에는 묵묵부답. 못들으신줄 알고 다시 한번 "할아버지! 안녕하세요?"하며 물음과 동시에 "그래 내가 경찰이다. 네가 뭔데 @#$%!!!"
"오잉!"
아차 싶더군요.
할아버지는 자폐증상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젊어서 어떤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누가 뭘 물어보는 걸 제일 싫어한답니다.
그런 성격을 모르고 누가 자꾸 꼬치꼬치 물어봤다간 "내가 보스다."라면서 화를 내고 얼굴이 험악해지고 무서워집니다.
그러나 그냥 아무말도 안시키고 있으면 온순한 모습으로 마당의 땅바닥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식사만 하셨다 하면 먼지가 뭐라고나 하는 듯이 땅에 있는 조그만 먼지조각도 다 쓰레기 포대에 담아버리고 아주 조그마한 휴지나 쓰레기를 남겨두지를 못합니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추측컨대 할아버지가 군대가셨을 때 낙엽이 떨어지던 늦가을에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인한테 실연을 당했거나 낙엽을 안 줏어서 상관한테 무지하게 혼난 일이 있지는 않았을까요? 그래설라무네 할아버지는 그 아픈 추억을 잊을려고 낙엽만 보면 기를 쓰고 다 쓰레기봉지에 담는 것은 아닐까요?^^
어쨌든 할아버지가 오신 이후로는 마당에 휴지조각 하나 없습니다.누구와 전혀 대화도 없고 다만 마당의 휴지와 낙엽만 줏으면서 하루의 일과를 보냅니다.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하고 사귀는 것에도 무관심하고 하다못해 할아버지의 친 형이 찾아와도 인사조차도 안하며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일단은 할아버지와는 무관심한 척 하면서 관심을 갖다 보면 할아버지의 닫힌 마음이 열릴때가 있겠지요. 분명히 그런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입니다. 그때에는 제가 꼭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할아버지! 낙엽지던 가을에 혹시 실연을 당하기라도....?"
그건 그렇고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 낙엽 떨어지는 가을의 모습도 시설의 운치를 한층 더해주는데 할아버지의 지나친 부지런함은 우리에게 그런 고상한 분위기를 누릴 수가 없게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