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나들이(둘쨋날 이야기)
성산홍보실
0
6613
2001.04.21 00:00
둘쨋날, 그러니까 4월 18일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밤늦게까지 주무시지 않던 어르신들이 일명 열외없이 조반상에 모였습니다. 우리 이금조 할머니와 이경호 할머니는 제주도에 와서도 간밤에 이불쟁탈 신경전을 벌렸다는 제보를 받은 것외에는 무사히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둘쨋날 첫 코스인 천지연은 땅과 하늘이 맞닿은 폭포수가 장관이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아들 못낳은 한이라도 푸시려는지 하루방의 코를 만지며 사진을 찍으시고, 결혼을 못해보신 할머니는 다정한 포즈의 신혼부부를 부러운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십니다.
동양최대의 대웅전을 자랑한다는 약천사를 휙돌아 돌고래쑈시간을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퍼스픽 아일랜드로 달려갑니다. 버스 안을 휙 돌아보니 요상한 커플 발견! 어제부터 할머니 두분이 나란히 앉아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한분은 할아버지로, 한분은 할머니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레즈비언 커플인가? 어쨌든 두분은 가는 곳마다 붙어다니며 부부못지않은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셨습니다.
돌고래와 물개의 재롱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삼방산이 내려다보는 바닷가 식당에서 한정식을 배불리 잡숫고 제주도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미지 식물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쯤되니 여행도 중반이라 서서히 다리 아프다, 허리아프다 하시며 뒤로 처지는 어르신들이 한분두분 속출합니다. 그 와중에도 한 장면이라도 더 보시겠다며 꼬부러진 허리에 꼬마 지팽이를 짚으신 한분이 할머니는 직원의 손을 꼭 붙잡고 올망졸망 쫓아 다니십니다. 여미지에서는 대규모 수학여행팀들과 맞닥드려 행여 한분이라도 미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총명하신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팀을 꾸려 곳곳을 구경하시고 정확히 약속장소로 찾아오십니다.
협제굴과 쌍용굴로 유명한 한림공원에서는 정말 미아할머니가 발생할뻔 했습니다. 여행가기 전부터 사실 걱정스럽던 할머니 한분이 계셨습니다. 재가 어르신인데, 정신이 조금 없으신 분이셔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본 분인데, 화장실에 다녀 온 사이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시기로 했던 할머니께서 사라진 것입니다. 쌍용굴과 협제굴을 내달려 쫓아 가니 다른 여행팀을 허겁지겁 따라가시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얼마나 가슴을 쓰러 내렸던지...
아무튼 둘쨋날 관광도 아무 탈없이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어르신들께서 말씀은 안하셔도 눈치를 보아하니 회를 잡숫고 싶으시다고 쓰여있습니다. 빠듯한 예산에 40분이나 회를 사드린다고 통박을 굴려보니 이만저만 돈이 들것이 아닙니다. 이럴 때 우리의 해결사 방기사님! 특공대 편성하여 회 공수작전에 돌입하여 수소문 끝에 시장통 횟집에서 싱싱한 회를 싸게 판다는 제주도 토박이들만 아는 일급비밀을 입수하였습니다. 회를 한입씩 머금은 어르신들은 제주도 구경보다 더 행복한 미소와 감사의 인사를 보탭니다. 우리도 뿌듯한 마음으로 늦은 잠을 청합니다. 제주도의 푸른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자장가로 들리는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