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도 아버지다와야....
성산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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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30 00:00
마당으로 뒹구는 낙엽을 보며 깊어져가는 가을의 정취가 슬프기만 합니다.
우리 시설에는 술을 너무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알콜중독으로 단란한 가정이 파탄이 나고 부인과 자녀들은 할아버지로 인하여 가정을 포기하고 도망을 갔었답니다. 할아버지는 혼자 생활할 수가 없어서 결국에는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로 책정이 되어 저희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중하며 어느정도 시설 생활에 적응이 되는듯하더니 할아버지는 또 다시 술로 세월을 보내십니다.
고성방가에 욕을 하며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기를 몇번 결국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다시 오길 두어번, 번번히 술을 안먹겠다고 약속을 해도 그때뿐 도저히 구제불능의 수준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도망갔다던 부인과 딸이 어떻게 알았는지 할아버지가 이 시설에서 생활을 하고 계신가를 묻더니 결국 자기네 가정이 파탄될 수 밖에 없었던 얘기를 하더군요.허구헌날 알콜로 인한 구타와 의처증으로 인해 아이들도 가출을 하고 그래도 그중에 둘째딸이 그런 환경에서도 공부를 하여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곤 발령지가 나기만을 기다리던 중이였답니다.
그러면서 제발 할아버지에게 자신들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말기를 정말 애원을 하더군요. 물론 우리들은 할아버지의 삶도 중요하지만 가족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도 중요함을 알므로 비밀로 하기로 했답니다.
단, 조건은 그래도 당신들의 남편이고 아버지니까 한달에 한번정도는 찾아와서 할아버지를 만나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그대로 하기로 했답니다.
할아버지는 그 가족들이 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그리곤 밖에 나가서 왔다갔다 하며 가족과의 해후에 기분이 들뜨나 봅니다.
그러나 몇일전에는 결국 그 딸이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답니다. 할아버지는 자기 딸이 초등학교 교사가 된 것을 알고 교육청까지 가서 당신의 딸이 다니는 학교를 알아가지고는 학교 교무실까지 술에 젖어서 찾아가 술주정을 했다더군요.
우리도 놀라고 화가났습니다. 그 딸이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숨죽여 살고 늘 아버지로 인해 가슴에 아픔으로 남아있을 상처가 많고 학생들이나 동료 교사들에게 어쩌면 감추고 싶었던 부분일것인데....
어쩌면 아버지라는 분이 그런 환경에서 자기 뜻을 펼치며 살아가는 딸의 장래까지 아랑곳하지 않고 술에 젖은 모습으로 횡설수설하며 교무실까지 찾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 싶은게 너무 황당하고 아버지도 아버지다와야지 아버지의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저 낳아줬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라고 한다면 너무 무책임한 건 아닌지?
아버지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 해주고 사랑으로 이뤄진 가정이라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자녀가 낳아준 아버지를 외면해야하며 자기에게 나타나는 걸 가장 큰 치욕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현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