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앨범
성산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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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28 00:00
계절은 바야흐로 가을의 문턱에 다다라서 뜨거운 여름이 턱걸이로 달려있는 요즘입니다.가을하니까 뭔가 찌잉하면서 어떤 추억에 잠겨보고 싶은 마음들은 없는지요?
가을을 느끼기엔 아직 먼거같아서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고라고라고라?
그럼 할 수 없지요.
그러나 오늘은 추억속의 앨범을 뒤적이면서 다시 보고싶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쓸까 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지만 아직도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박할머니가 계십니다. 뭐 좋은 의미로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게 아니라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또 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어떡해? 하면서 두려움반 추억반으로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할머니십니다.
살아계시면 80세 정도의 연세이신 박할머니의 외모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도 1미터70센치면 큰 키인데 그 시절에 1미터70센치 정도의 꺽다리 키에 얼굴은 거짓말 안붙여서 정말이지 드라큐라 영화의 주인공은 맡아논 당상이고 그게 아니면 팥쥐할머니 같은 외모를 해서 처음부터 보는 사람으로부터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외모입니다.
거기다가 외모에 어울리게 성격은 얼마나 괴퍅+괴상+난폭 한지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늘 공포분위기를 띄우며 인상을 쓰고 다니다가 혹시 자기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마구 욕을 하거나 트집을 잡는 겁니다. 특히 양로원에서 조금 똑똑하다 싶거나 예전에 좀 잘 나갔다(?) 하는 사람들이나 시집 잘가서 집에 머슴 좀 두고 살았다고 자랑했던 사람들은 다 박할머니에게 찍히는 겁니다.
정말 "공포의 꺽다리"라고 우리가 부를 정도로 늘 공포의 대상이 되곤 한 할머니여서 골치가 많이 아펐습니다. 그 즈음에 또 윤할머니라는 분이 입소를 했는데 다른 분들은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하면서 정말로는 무서워서 슬슬 박할머니를 피하는게 상책이라고 피해버리는데 이 윤할머니도 또한 보통 성격이 넘어서 만만치가 않은 적수끼리 만난겁니다
둘이서 만났다 하면 싸움박질을 하는데 그냥욕은 기본이고 밥 먹을때 입안에 있는 밥풀 튀겨가면서 욕하기, 물건집어던져 부수기,서로 올라타서 두들겨 패기,마지막에는 대야에다 물을 퍼서 방에다 물붓기등등 우리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싸움을 하는데 매일같이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겁니다.
아무리 점잖케 타일러도 보고 퇴소시킨다고 협박을 해봐도 그 때뿐. 어느틈에 황야의 무법자들처럼 양로원의 무법자들의 쌈판은 시작되었고 그 쌈 말리느라고 우리 직원들이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싸움할때면 어김없이 해결사(?)가 되야하고 심판관(?)이 되야하고 중재자가 되야하는 우리의 운명을 우린들 알았겠습니까? 정말 그때 싸움 엄청 말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웬만한 싸움에는 콧방귀도 안뀌고 기냥 내버려둡니다. 그럼 자기들 끼리 저절로 화해들을 하고 끝이납니다.
그런데 한가지 박할머니의 좋은 점은 메주를 쑤거나 시설에 큰 일이 있다하면 자기가 앞장을 서서 시작을 하고 다른 분들은 하기 싫어도 성질더러운 꺽다리할머니가 먼저 하니 어쩔 수 없이 협조들을 하면서 시설의 큰 겨우살이 살림들을 돕고는 했던 할머니십니다.
메주쑤기할때는 큰 가마솥에 콩을 넣고 군불을 때가면서 정성을 들였고 또 할아버지들이 삶은 콩을 밟으면 할머니는 네모나게 척척 메주를 만들어 벽에 걸어놓고 김장철에도 앞장서서 배추를 다듬고 양념을 버무리면서 젊은 우리들이 힘이 들꺼라면서 잘한다! 고맙다!하며 격려성발언도 아끼지 않던 할머니!
약하고 힘이 없거나 무시당하는 할머니들은 또 자기가 다 거둬서 봐줘야한다며 본인들은 싫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일일이 신경을 써주던 할머니!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할머니에게 도대체 이렇게 술을 많이 먹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떡하냐고 물어볼 때 할머니는 "나는 한이 많아서 그런다.내가 시집가서 소박맞고 영감이 첩을 얻어서 나가고 나니 자식들을 데리고 살기가 너무 힘들었고 큰딸까지 자살을 해버리고 나니 살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내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10권을 써도 모자란다. 그래서 그때부터 자식들 키우려고 장사를 해야했고 술도 배우고 담배도 피우면서 성격을 다 버렸다"고 하면서 우시는 겁니다.
아마 살아오신 환경과 가슴속에 시커멓게 응어리진 한이 맺힌 것이 그분의 성격을 그렇게 난폭하고 괴퍅하게 만들었던것 같습니다.
위암으로 돌아가실 때쯤해서는 자기가 너무 많이 속을 썩였다고 하면서 일부러 우리의 손을 잡고 미안해 하시다가 돌아가시면서 자기 지갑에 있던 10여만원을 양로원에 기부하고 싶다는 유언을 하더라고 처음보는 그 분의 딸이 얘기를 해줘서 알았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겨우살이 준비를 할 때면 그립기도 하고 몸서리쳐지기도 하는 박할머니를 우리 직원들과 할머니들은 간혹 이야기를 합니다.
"그 공포의 꺽다리 할머니가 계셨으면 메주쑬 때 좋을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