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중매 서 드릴께요 !!!! (약.속)
성산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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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2 00:00
경수할아버지가 아픕니다. 아주 많이 아픕니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매일매일 불안한 가운데 생의 마지막을 맞을 것 같기에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들도 불안합니다.
눈을 감고 침대위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의 눈가가 살살 떨립니다.
간혹 눈을 뜨면 우는 듯 혹은 웃는 듯 짙은 그리움이 어리던 그 눈빛이 슬퍼보입니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과거의 여행속으로 빠져드는 지는 모릅니다. 언제가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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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장가도 못가고 상주에서 남의 집 머슴으로 혼자 늙었습니다. 아무런 일가부치도 없이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늙어버린 쑥맥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병이 들자 주인집에서도 할아버지를 모실 수가 없어지자 저희 시설에 입소의뢰가 되어서 들어오셨습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할아버지는 누구와 친해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오랜기간 눈만 뜨면 성로원 대문앞에 멀거니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힘없이 쳐다보는 것이 하루의 일과이던 할아버지는 당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아롱이와 다롱이를 제일 먼저 사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시설에 적응이 되면서는 시설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칼을 갈아주면서 칼쟁이 할아버지로, 아롱이 할아버지로, 가끔가다 직원들에게 노란껌을 불쑥불쑥 사다주는 껌할아버지로 우리들을 기쁘게 해주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뇌수술을 받고 나서 여러가지 합병증과 내과적인 문제로 인해 아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음식을 잡수실 수가 없어서 영양주사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다가 아주 곡기를 끊고 음식을 거부하십니다.
직원들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갖가지 영양죽에다 과일즙등 매 끼니마다 할아버지가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 봐도 헛수고. 할아버지는 기력이 점점 더 떨어져서 눈을 뜨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몇일 전부터는 분명히 의식도 있고 내과적인 문제도 조금은 차도가 있는대도 할아버지가 계속 음식을 거부하자 우리들이 생각해 낸 방법이 미인계를 쓰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옆방에 계신 자칭 공주병에 걸린 장할머니를 모셔다가 옆에 앉아 있게 하자 할아버지는 미소를 쫘~악 지으시며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정말 우리들도 놀랐습니다. 거의 돌아가실 지경인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하시고 정신이 가물가물하다가도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는 용케도 알아듣고 또 미소를 지으십니다.
가끔가다 "장할마이 사.랑.한.다."하고 직원이 시키면 할아버지는 크게 소리를 지르고는 또 다시 잠이 들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장개 가봤나?" 하며 가장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면 할아버지는 "안갔다"하며 힘이 없어도 꼬박꼬박 신상에 대해 얘기를 해주십니다.
그 동안 궁금해도 남의 눈이 무서워서 물어보지 못했던 사항들을 병상에서 잽싸게 물어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대화가 깊어갈 수록 옆에서 지켜보는 직원들도 웃음이 나와서 참기가 힘이듭니다.
여러가지 궁금한 사항을 물어본 할머니의 결론은 "죽지는 않겠다"하시며 희망적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시간마다 와서 들여다 보며 투병중인 할아버지의 옆에서 노래도 불러주며 잠 자는 걸 애타하며 저렇게 자면 안되는데....자꾸 말을 시켜야 되는데...하며 걱정하는 장할머니가 너무 귀엽습니다.
어쨌든 할아버지! 낫기만 하세요.
그러면 사모관대 쓰고 장가갈 수 있도록 중매 한번 설게요.
정말이예요.
제가 보니까 장할머니도 혼자된 세월이 60년이 넘었다면서 은근히 할아버지를 좋아하던 눈치였어요.
알았지요? 이 봄이 다 가기전에 얼른 완쾌가 되셔서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근사하게 결혼식 한번 해 봅시다. 그래서 근사한 신방도 차려보고 두분이서 한번 행복하게 남은 여생을 살아보세요. 그래야 우리 원장님도 처음으로 주례를 서는 영광도 누려볼 것 아니예요? 그렇죠?
제발 기회 좀 한번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