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떠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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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떠나셨습니다

성산홍보실 0 4835
할머니는 12년 전에 저희 시설에 오셨습니다. 연세에 비해 아주 정정하고 똑똑해서 입소하던 길로 바로 다른 어르신들을 휘어잡을 정도로 할머니는 어디를 가나 튀는 편이었습니다. 보통 처음 입소해서는 두어 주간은 분위기를 익히고 쭈삣쭈삣하기가 쉽상인데 할머니는 오시던 날부터 수박을 사서 돌리며 우리 친하게 지내자며 사람들에게 자기 입소의 턱을 단단히 하시던 12년 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할머니를 따라온 사람은 아무도 없이 혼자서 택시를 타고 오셨던 걸 기억합니다. 그 이후에 할머니는 시설의 어떤 일이든지 적극성을 띄고 참여를 하며 못배운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기도 하고 앞서 간 아들이 살아있기만 했어도 내가 이런 시설에 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늘 상기시키며 자식을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 서울대학교를 졸업시킨 어머니로서의 자부심 하나만으로 어려운 세월을 이기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포장일 뿐 당신은 늘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지를 않으면 홧병이 도질것 같다며 늘 입에 담배를 달고 살았습니다. 할머니의 많고 많은 恨(한)에는 죽은 아들에 대한 회한과 며느리와의 갈등, 그리고 손자 손녀와의 별거가 할머니를 늘 괴롭게 하고 힘들게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할머니는 괴롭고 힘들때면 405장 찬송가를 부르시며 혼자 눈물을 짓기도 하고 미운 며느리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 그래도 한번 쯤을 찾아줄것 같은 며느리를 기다리곤 했었습니다. 할머니의 욕은 그리움에 대한 표현인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무심한 며느리는 12년 동안 한번도 얼굴을 안보이더니 오늘 87세의 일기로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한 할머니의 장례식날 병원 영안실에서 죽은 시신을 통하여 우리와도 인사 아닌 인사를 했더랬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을 하고 있으면서 한번 만이라도 며느리가 보고 싶다라고 말 했건만 며느리는 결코 할머니를 찾지 않더니 결국은 병원 장례식장에서 자식의 도리를 다 한다고 하얀 소복을 입은 모습을 봐야하는 순간이 너무 어이없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몇년 동안을 거동을 못하고 누워서만 생활했을 때 옆에서 정성껏 돌보던 직원들과 할머니가 예전에 나가셨던 교회의 성도들의 애도속에 할머니의 시신은 운구되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우리 직원들의 발걸음이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지요. 아마 할머니의 피붙이들이 인사 한마디 없이 냉정하게 돌아서는 모습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쩌면 미안해서, 어쩌면 이제와서 인사하기가 겸언쩍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래도 단 한마디 당신들을 대신해서 자기의 어머니를 돌봐준거에 대한 감사의 말 한마디면 족한 인사를 못하고 외면했던 그 분들의 여유없음이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 할머니는 영생에 대한 소망이 확고했습니다. 임종을 맞기 전날부터 호스피스실에서 찬송가를 들려드리며 수시로 직원들이 기도해 드릴 때 마다 할머니는 "아멘 아멘"하면서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으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할머니는 영생의 축복이 약속된 주의 자녀들이 가는 곳 천국에서 모든 고통과 미움과 아픔을 다 잊고 이제는 행복하게 웃으면서 우리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시며 사시겠지요. 그동안 고마웠다고 직원들 이름 한사람 한사람을 불러가면서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나를 위로해 주고 내가 아플때 돌봐준 직원들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하시며 잠깐 사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히 사는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오늘도 인내하며 승리하면서 살라는 할머니의 기도소리가 우리 귀에 쟁쟁히 들리는 듯 합니다. 할머니!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된 그곳에서 만날 때 까지 날마다 날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럼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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