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호실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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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호실 할배

성산홍보실 0 6877
2007년 첫해의 첫번째 일기의 주인공을 103호실 할배로 시작을 하렵니다. 오늘도 할배는 땅땅땅 이야기로 웬종일 직원들을 볶아댑니다. 치아가 없으셔서 무슨 말씀인지 통 알아듣지를 못하겠지만 그래도 자세히 들어보면 땅 이야기로 시작해서 땅이야기로 끝이 나는 이야기 주제가 오늘도 또 땅입니다. 자기 땅을 자식들이 뺏어갔다고 경찰에 고발을 해야 한다고 흥분하시지만 그 누구도 자세히 들어주지를 않습니다. 그 자녀들 조차도 듣다 듣다 지쳐서 이제는 한 귀로 듣는둥 마는둥 하지만 할배는 끊임없이 땅 이야기로 시간을 보냅니다. 할배는 93세 입니다. 공주가 고향이라는 할배는 얼굴이 곱고 예쁘게 생기셨습니다. 연세에 비해 근력이 좋아보이는 할배는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라서 침대 모서리를 잡고 알통을 키운다고 운동을 하지만 나올 알통도 없습니다. 취미와 특기는 잡숫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눈만 뜨면 잡숫고 눈을 감고 주무시면서도 입안 가득 음식물을 넣어야만 포만감을 느끼시고 댁에 계실 때에는 간식꺼리가 없으면 누룽지라도 입에 넣어서 잡수실 만큼 음식에 심혈(?)을 기울일 정도로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당신네 족보를 들여다보면서 자기 땅도 아니고 남의 명의로 되어 있는 충청도 공주와 아산에 있는 땅 16,000평을 나눠줬다 뺏었다 하면서 변덕(?)부리는 게 유일한 취미요 특기입니다. 직원들이나 자녀들에게 기분이 좋은 날은 아무렇게나 찍 찢은 종이에 땅 200평, 땅 300평을 준다고 평수가 적힌 종이 쪽지를 돌리는데 받는 사람들은 황당해서 웃고 주는 사람은 흐뭇해서 웃는 요즘 보기드문 우스꽝스러운 광경입니다^^. 할배는 약간의 망상 증상 같은 치매가 왔습니다. 많은 형제들이 다 죽고 당신 홀로 남았는데 당신 부친의 이름으로 있던 충남 아산 땅이 지금은 혼자된 제수씨 명의로 된 걸 늦게야 알았답니다. 할배의 자녀들도 억울한 마음에 변호사들을 찾아다녀 봤지만 이미 이의를 제기하기에는 너무 시효가 늦어버렸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찾을 수 없는 땅이라고 포기하시라고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할배는 전혀 들으려 하지를 않고 도리어 변호사에게 물으러 다녔던 자녀들을 도둑놈으로 몰면서 자기 땅을 가지고 갔으니 내놓으라며 호통을 치시는 겁니다. 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 분하고 원통한 마음은 우리들도 이해를 하지만 그러나 이미 법으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데도 할배의 원망은 하늘을 찌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자기 자식들이 땅을 뺏을려고 자기를 시설에 데려다 놨다고 자녀들을 닥치는 대로 다 고발조치를 하겠다고 쫒아 다니십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방에만 혼자 계셨다하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짜놓고 아무나 주인공을 시켰다가 도둑놈으로 몰았다 자기 땅을 또 누구를 준다고 했다가 뺐었다가 혼자서 각본을 짜서 상상하는 할아버지가 정말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연세도 높은 할배가 하늘을 찌르는 분노와 원망으로 늙어가는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 땅을 찾은들 뭘 하겠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할배에게 넓은 땅덩어리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 만은 정말 현실로 행정도시로 개발되는 그 땅을 할배가 찾아서 자녀들을 나눠준다면 그 자녀들이 억수로 부자가 되고 행복할런지 모르겠네요. 박경리가 쓴 토지의 주인공 서희처럼 잃었던 땅을 되찾는 것도 아니고 몰락한 가문을 다시 세우는 것도 아닌 할배의 아무 쓸모도 없는 집념의 끝이 어딘지를 모르겠습니다. 인생의 겨울나기를 하시는 할배가 야곱처럼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자녀들 한사람 한 사람을 축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라고 축복하는 할배였으면 좋으련만 현실의 할배는 그런 믿음이 없는가 봅니다. 제발 할배가 그런 믿음의 할배가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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