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가득 꽃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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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가득 꽃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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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가득 꽃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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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주(원예치료사)

 

2006년 어느 날, 가슴 가득 꽃을 안고서 예전에 하시던 선생님 보다 더 어린, 학생같은 선생이 앞으로 함께할 거라고 처음 인사를 드렸다. 몇 년씩 프로그램에 참여하셔서 꽃꽂이를 하거나 식물을 심을 때 전문가라고 자신있게 말씀하시는 어르신들과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며 선생으로 인정받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던 때였다.

“전에 선생은 안그랬는데” , “이렇게 하는게 맞아” 하던 시간들이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 선생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붙고 존대를 해주시고 프로그램시간 보다 일찍 와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인정받는 것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수많은 대상자들과 라포를 형성하면서 어르신들과의 프로그램에서 제일 교감이 잘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로인해 논문의 방향도 어르신들로 하였다. 다른 대상자들을 편애한다는 건 아니다. 원예치료사로서 직업적인 사명감 외에도 수반되는 여러 가지들이 있지만, 좌절하거나 힘들 때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하는 건 대상자들의 변화되는 모습과 그들이 보여주는 신뢰감이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단단해져서 힘든 상황에서도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하고 싶은 일이 직업이어서 행복하다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이기 때문이다.

해가 거듭되어지니 어르신들께서 새로운 구성원에 대해 텃새를 보이셨다. 원예치료에 참여하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 노인교실 개강 전 신청이 필요한데, 어르신들 나름의 구성원을 받아들이는 기준이 있는 듯했다. 자존감을 높이고 기르기를 통해 책임감과 나눔을 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내 것’ 이라는 생각이 강한 어르신들의 고집을 자연스럽게 ‘우리’ 라는 생각으로 바뀔 수 있도록 방향을 정했었다. 자리배치를 새로이 하고 모둠을 통하여 구성원들간의 균형과 모둠간의 경쟁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결과물을 방이나 문 앞에 배치하던 것을 공동공간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요양보호사선생님들께 관심을 보여주시고 격려도 부탁드렸다. 어르신들의 지지를 받는 반장님의 역할이 컸고 협조적이신 몇몇 어르신들의 역할도 한몫을 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변화를 본인의 역할로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셨고 복도를 지날 때, 현관을 나설 때, 식당 앞을 지날 때 식물들이 자신들을 반기는 것 같다고, 창문에서 이쁘게 피어있는 꽃이 질 때면 아쉽다고 하셨다. “이 좋은 세상을 오래오래 아프지 않고 살고 싶다.”는 것이 남은 소원이라는 어르신 “나이가 들면 흐르는 시간은 더 빨라진다.” 꽃같이 이쁘던 시절이 있었는데 라고 하셨다. 프로그램 중 한 어르신이 남자 어르신께 “오빠”라고 하시는데 주변에서 흔히 듣는 단어였지만, 느낌도 다르고, 새삼스럽게 느껴지는데 ‘그들만의 세상’ 이라고 어르신들 나름의 세상이 이루어져있는데 나도 모르게 어르신들의 세상을 간과한 것이 아니었나하고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다.

장미, 국화, 조, 수수, 보리와 같은 익숙한 이름과 소재를 재료로 사용할 때는 어르신들은 자신있게 이름을 크게 외치신다. 외래어가 섞인 리시안, 스톡, 스타티스, 알스트로메리와 같은 소재는 이름을 반복적으로 말하기를 하지만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며 기억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그래서 색상을 달리하여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말하기를 반복하면서 처음 본 것처럼 낯설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인지시켰다. 어르신들은 옛날 기억과 학습된 것은 또렷하게 알고 있지만, 최근의 학습된 것들은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어르신들 나리꽃과 백합을 구분하고 꽃이 피면 노란술을 제거해 주어야하고 서양도라지는 리시안이라는 것을 연상을 통하여 조금씩 기억하였다. 프로그램 전 에 하는 손 운동과 식물심기를 할 때 배수층을 만들고, 꽃꽂이를 할 때 소재를 받고 다듬고 색상을 분류하는 과정을 지속적인 반복을 통하여 치매어르신들께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해내시는 것을 보면 뿌듯함마저 느낀다. ‘지난 주 심은 국화가 이쁘게 피었다.’ ‘물리치료실에 선물을 하였다’ ‘TV옆에 꽃을 두고 다같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말수가 없던 분이 먼저 이야기를 하고 반갑게 인사 나누며 안부를 묻고 결과물을 기꺼이 나눔 해주시는 변화되는 모습이 지나온 시간의 결과들로 나타나고 있다.

어르신들은 퇴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느리지만 성장도 하신다. 프로그램 중 실습선생님들께 어르신들이 도움을 직접 요청할 때까지 지켜봐 달라고 한다. 타인의 도움이 나의 역할보다 컸을 때 결과물을 두고서 어르신들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고, 도움을 준 사람이 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떨리는 손으로 소재를 잡을 때도 길이 조절을 위해 도구를 사용할 때도 지정하는 위치를 찾아서 꽂을 때도 실습선생님들의 기다림의 시계와 어르신들의 시계에서는 흐름의 차이가 있다. 보조적인 도움을 받을 때 자신의 역할 비중이 컸을 때 느끼는 자존감은 어르신들께는 만족감으로 표현이 된다. 간혹, 관심받기 위해 ‘어렵다’, ‘힘들다’, ‘한번 해보라’ 등을 실습선생님들께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면 결과물에 대해서 ‘이 선생이 다했다.’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실습선생님들이 묻는다. 무한신뢰에 대한 비결을. (결과물에 대해서 나에게 확인을 받고 “잘하셨다.”는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시거나 지정하는 곳의 위치나 자신의 역할을 꼭 나에게 확인받고 행동하시는 경우들이 있다.) 시간이, 통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늘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약속처럼 함께한 만남들이 어르신들의 시계에 함께 움직이고자 한 노력들이 보여주는 결과가 아닐까요?!

그런 해들이 지나서 2014년 12월 16일. 마지막 인사처럼 하고 싶지 않아서 늘 그렇듯이 건강하게 겨울 잘 보내시고 다시 뵙자는 인사에 “선생님도 잘 보내시고 한 해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라며 두 손 꼬옥 잡아주시는, 우리 원예선생님이라고 자랑해주시는 어르신들... 해가 바뀌어 개강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아쉬움에 그리움에 아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간들을 함께할 수 있어서, 원예치료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해주신 원장님, 챙겨주신 복지사 선생님, 요양보호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이어린 선생을 깍듯이 대접해주시고 밝은 웃음으로 맞아주시던 정 많고 흥겨운 우리 어르신들. 가슴 가득 안고 가는 많은 이야기들로 한분, 한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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