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하는 것들 (1)
성산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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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9.26 00:00
늦은 귀가길 버스안에서 오늘있었던 일에대하여 우리 함께 생각해보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그리고 그 답은 현명한 여러분들께 맡깁니다.
똑! 똑! 똑!
오후에 아주잘생긴 40대 중반의 건장한 체격의 아저씨 한 분이 방문하셨습니다.
쭈삣쭈삣 자리에 앉아 상록실의 『저- 이○○ 할아버지…… 』하며 말꼬리를 내리는데 아하! 싶더군요. 죽음의 기로에서 사경을 헤메는 올해 76세된 이○○할아버지. 잘 생긴 이목구비가 아주 흡사하게 닮은 것을 보니 이 노인의 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디다. 이것저것 물어볼 겨를도 없이 "이사람이 우리가 그렇게 찾던 할아버지의 아들이구나"하는 생각이 나면서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울화를 인내심으로 꾹 참고 고개 숙인 아저씨의 모습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 제가 저기 상록실에 누워계신 이○○ 할아버지의 아들되는 사람입니다. 그 동안 연락을 받고도 찾아오지 못한 것에 대해서 어떠한 이유로라도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제 위로는 형님이 하나 있었지만 어려서 죽고 아버님은 제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핏덩이였던 저와 어머님을 남겨두고 일본으로 건너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긴 세월동안 연락조차 없었고 소식도 두절되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어머님은 모든 것을 잊고 결국 재가하셨죠. 일본으로 훌쩍 떠나 버린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아버님은 우리 앞에 나타났고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본에서도 결국엔 밀입국인지 뭔지 여하튼 좋지 못한 일로 도망오다시피 돌아오셨구 그곳에서도 가정을 가지고 자녀를 몇 명은 둔 것 같더군요.
재가하여 살고 있는 어머님께 다짜고짜 사업 자금을 대달라며 돈을 얻어가고 툭하면 나타나서 심리적 부담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 어머님도 그 충격 때문인지 뇌졸증으로 대소변을 제대로 못 가리며 6년을 고생하다가 결국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은 저에게도 느닷없이 찾아와 무슨 사업인지를 한다며 사업자금을 요구하기도 하여 저도 아버님께 돈을 쥐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 후 아버님은 숙모님과 같이 산다고 듣고는 다시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
도 찾지도 않았습니다. 너무도 어려서 헤어졌기에 아버지에 관한 기억도 없고 아버지라곤 하지만 이렇다할 기억도 정(情)도 솔직히 없습니다.』
40대 중반이 된 이 아저씨의 눈가에 스칠 듯 말 듯 고인 눈물과 속죄하는 심정으로 말을 잇는 그 모습을 보고 가장(家長)의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인해 갈갈이 찢겨진 한 가정의 가족사를 들으며 지난 몇 년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4-5년전 그 동안 혈육이 없는 것으로만 알려진 이○○할아버지가 누군가의 이름을 대면서 좀 찾아달라기에 이곳저곳 수소문하여 찾고 보니 우리 시설 인근에 살고있더군요. 즉시 연락을 취했지만 자기와는 별상관없다는듯이 모른체하더군요.
그런데 알고보니 이 노인이 찾던 사람이 오늘 모습을 나타낸 아들
이었습니다. 얼마안있어 이제 이 할아버지의 이 세상에서의 삶도 종착역에 다다를 것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자주 찾아오셔서 두 부자간의 가로막힌 마음의 담장을 허물고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저희 같이 아픈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수고해 주시는 분들께 그저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말을 남기고 아버님을 좀 더 보고 가겠노라며 아저씨는 사무실 문을 나섰습니다.